음악 교과서에 아리랑을 수록하는 작업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다. 사회적 측면으로는 근대화 과정으로 밀려난 국악의 복권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고조시키려는 것이고, 심리적 측면으로는 청소년기에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을 향상시키고 가치관을 심어 주려는 것이다. 또한 교육적 측면으로는 우리 가락의 독창성과 장단 및 음계를 통해 민요의 멋과 흥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은 구체적으로 교수학습 과정에서 문답식과 감상, 가창, 기악 등과 같은 실기 학습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다.
해방 직후의 교수요목기(1945-1954)를 거쳐 제1차에서 3차(1954~1983) 교육과정까지는 교과서에 국악으로서의 아리랑을 수록하지 못했다. 이후 제6차 교육과정에 이르러서야 국악과 민요 구성에서 아리랑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러나 다른 내용과의 구성 비율 간 격차가 심하게 나타났다. 전체적으로는 서양 음악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 국악(國樂)과 다른 문화권 음악을 가르쳐야 할 정도였다. 더욱이 민요와 같이 자연적 발생과 구전심수로 인해 정간보로 기보되지 않았던 장르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을 중심으로 다루어졌다. 이어 〈밀양아리랑〉, 드물게는 〈진도아리랑〉이 편재되었다. 이로써 교과서는 국악으로서의 민요 아리랑을 다루기보다는 민족의 상징성에 주목하여 편재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72년 초등학교 음악교과서 표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아리랑>
한편 1950년~1970년대까지의 음악 교과서 편수관은 이흥렬, 금수현, 박태준, 나운영 등으로 모두 양악 전공자들이었기에 토속 아리랑인 〈아라리(정선아리랑)〉가 수록되지 못하였다. 실제 1961년 국민음악연구회가 편찬한 《고등음악교본(1)》의 <감상 민요(民謠/folk song)>에서 인류사회의 민요 발생론을 언급한 마지막 부분에 “한국 민요는 우리 감정에서 나온 약간 비애적인 선율이 많다. 〈아리랑〉, 〈양산도〉, 〈박연폭포〉, 〈도라지타령〉 등이 있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 민요를 독립적으로 배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급하고 있는 민요조차도 악보나 가사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이 시기에 음악 교과서의 편찬 작업이 국악과 민요를 전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961년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 표지(국민음악연구회)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밀양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