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아카이브

아리랑 이야기

아리랑의 상품화

문학과 아리랑

아리랑의 상품화

 

  ‘아리랑’의 유명세와 상징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된 사례는 다양하다. 외교클럽《아리랑》, 나주《아리랑 배(梨)》, 《아리랑 버선》, 모던 카페《아리랑》, 회령 여관《아리랑》, 경성《싸롱 아리랑》, 신의주 조선요리 《아리랑圓》, 경북 옥산《아리랑食堂》, 회령 식당《아리랑》, 신의주 카페《아리랑》, 경성《아리랑菓子》, 악단《아리랑뽀이스》, 사진관《아리랑》 등 상호와 상품명이 다양하게 확인된다. 아리랑이 상품명이나 상호에 차용되었다면 이는 아리랑이 대중의 생활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셈이다. 아리랑이 대변하는 ‘조선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활용한 결과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위성 제1호 아리랑’,  ‘국가브랜드 아리랑‘ 등에  활용되었다.

 

조선 관광상품 '아리랑엽서'

  규격 사진엽서, 회(繪)엽서 또는 하가끼(はがき). 이 중에 아리랑 사설을 담은 것을 ‘아리 랑 엽서’ 또는 ‘아리랑 그림엽서’라고 부른다. 이런 종류는 엽서(14 x 9cm) 형태만이 아니다. 내용은 유사하지만, 규격이 다르고 사진 인화지 상태인 것도 있는 등 다양하다. 상업성을 지닌 이런 엽서는 원래 일본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하였다. 통신 수단을 넘어 홍보를 목적으로 발행하기도 하는 대중의 소비 상품이었다.


  아리랑 엽서는 주로 일본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판매했다. 가격은 1939년 기준으로 35~40엔 정도였다. 내용은 나약한 조선을 이미지화한 기생이나 옛 풍속 사진 또는 그림이었으며 아리랑 가사를 함께 수록했다. 가사는 대개 5~7절을 한 세트로 하여 한글과 일본어를 병기하여 상품성을 높였다. 전국의 유명 사진관과 관광명소, 그리고 <경성관광협회>와 <남만주철도 교통안내사>가 운영하는 각 기차역의 구내매점에서 판매하였다. 엽서에 아리랑을 수록함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아리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 아리랑 엽서 이미지
  • 아리랑 엽서 이미지
  • 아리랑 엽서 이미지
  • 아리랑 엽서 이미지

 

 

 

'최초의 상품화' 필터 담배 아리랑    

  아리랑은 주로 ‘최초’ 또는 ‘최고’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담배 아리랑이다. 1958년 1월 출시된 최초의 필터 담배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애호품일 만큼 인기를 끌었으며 담배 ‘거북선’과 경쟁하면서 24년간 판매되었다. 당시 시중에, 《쓰리랑》이라는 이름의 가짜 아리랑 담배까지 돌아다녔을 만큼 고급담배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특히 5~6년 기간을 두고 디자인이 교체되어 대중 상품의 디자인 역사를 대표하는 자료로 평가되기도 한다. 1988년 88올림픽을 끝으로 사라졌다가 2006년 재출시된 적이 있으며, 현재는 단종 되었다.

  • 1958년에 출시된 최초의 필터 담배
    1958년에 출시된 최초의 필터 담배
  • 2006년에 재출시된 아리랑 담배
    2006년에 재출시된 아리랑 담배

 

 

 

한국전 참전 기념 '아리랑 페넌트'

  미 7사단가의 채택 배경과 시기에 대해 알려 주는 자료가 ‘아리랑 페넌트’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승전 후 맥아더 장군에게 프란체스카 여사가 아리랑 악보를 수(繡)로 세긴 페넌트를 증정했는데, 이를 계기로 채택했다는 설이 있다. 이 결과로 아리랑 악보가 미군들의 귀국 기념 페넌트와 손수건 등에 담기게 되었다. 종류로는 10여 종에 이른다.

  형태는 주로 비단에 한국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호랑이, 태극기, ‘그네 타는 여인’ 모습 등을 새김으로써 한국전쟁에 참전한 UN병사들의 기념품이 되었다.

  • 아리랑 페넌트 - 한국상징물과 참전국가 국기
  • 아리랑 페넌트 - 그네타는 여인